깨지고 박살난 규슈여행 #3. 비오는 나가사키의 낭만

2015. 3. 6. 20:15Travel/2015 - Fukuoka




 

아니나 다를까 아침부터 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전 날 호텔에 도착했을 때의 얄미움보다는 덜했지만, 어쨌거나 하늘이 밉다. 호텔 맞은 편으로 달려가 보스 캔커피를 하나 마신다. 저녁에 샀던 우산을 펼치는데, 이런 젠장. 산지 24시간도 안된 우산이 펼쳐지지가 않는다. 몸도 아픈데 뭐 이런 개같은 상황이 다있나. 비도 오고 기분도 얄궂고 백팩은 무겁고, 이게 무슨 여행인가 고행이지. 그렇게 10분간 어떻게 해야하나 고심한 끝에, 바닥에 떨어져있던 머리핀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핀셋으로 우산을 고정했다. '이 정도면 되었겠지?' 

 

 






 

극약처방뒤 오란다자카를 살펴보기 시작한다. 몬터레이 호텔에서 오란다자카 거리는 아주 가깝다. 불행중 다행이다. 올라가는 길에 한 아주머니가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해줬다. 갑자기 하신 인사에 안녕하세요라고 답할 뻔 했다. 밝은 미소로 해주신 인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이 거리를 오르며 고양이도 만났다. 특별할 것 없지만 오전의 오란다자카는 여유로움 그 자체다. 오르다보면 삼거리가 사진처럼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대표적 관광지중 하나인 글로버 정원과 오우라 천주당이 나오고, 왼쪽으로 가면 차이나타운이 나온다. 우산을 바꾼 다음 차이나 타운을 한번 더 돌아보기로 한다.


 

 







 

골목 이름이 미사키길인가 보다. 조금 내려가다보면 신치중화가를 만나볼 수 있다. 나가사키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외국문화 도입의 산지답다. 그래서 더 독특하다. 일본에서 만나는 중국과 유럽이랄까? 고베에 갔을 떄 건물들을 보며 유럽스럽다고 느꼈는데, 나가사키도 그런 맛이 있다. 신치중화가에서 처음 만난 절을 찍어보는데, 관광객으로 보이는 일본 여자 두 명이 뒤를 돌아 신기한 듯 쳐다본다. 이 번 여행의 관광지 사진들을 올리면서도 명칭이나 이름을 표기할 수 없음에 미안할 따름이다. 여기는 어디고 다음은 어디고 이렇게 기록하며 다니기엔 멘탈이 온전하지 못했다. 그저 방향만 맞게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지도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신치중화가를 빠져나오며..







 

일요일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차이나타운을 시작으로 어디 조용한 곳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절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는 외곽으로 조금 빠져봤다. 사진의 절은 나가사키 역에서 받을 수 있는 나가사키 관광맵에 있는 4번째 절이다. 절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무덤들이 많은 곳인데, 여자분들이 올라가기에는 조금 스산하게 느겨질 수도 있지 싶다. 오래 전 보았던 일본사무라이 영화의 배경지로 딱 괜찮을것 같았던 곳이다. 정상까지 올라가려다가 포기하고 내려왔다.

 

 




 

땀 범벅이 된 내가 다음으로 찾을 곳은 커피 한잔이었다. 이제는 좀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앉아있고 싶었다. 머신 커피는 싫었다.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드립커피의 장인을 찾아보고 싶었다. 구글링 끝에 미리 다녀온 사람의 리뷰를 보고 찾아갔다. 가게 이름은 히토마치. 이 글을 쓰는 오늘에서야 히토마치에서 사온 원두를 모두 마셔버렸는데, 2-3개 사올걸 후회가 된다. 신치중화가의 뒷골목으로 가면 만나볼 수 있다. 5분 정도 헤매다가 근처에 가서 현지인에게 물어봤는데, 대번에 저기라고 손가락을 들어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아저씨는 길을 가다가 되돌아와 나와 같이 걸으며 여기라면서 자세하게 알려줬다. 간판이 크지 않아 자세히 보면서 걸어가야 한다. 물론 필자가 추천해주는 방법은 근처에 가서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는 방법이다. 

 

 




 

프렌차이즈 커피점처럼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있는 곳은 아니다. 드립커피를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약배전, 중배전, 강배전. 3가지의 로스팅된 드립커피를 마셔볼 수 있다. 라떼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 나름 유명하다고 마스터의 기분을 조금 띄워줬다. 네이버에서 나가사키 드립커피라고 치면 히토마치가 빠지지 않으니 뭐 틀린말은 아니라 생각된다. 그리고 미디엄 로스팅의 드립커피를 한 잔 주문하고 5분 정도 주위 사진을 찍었다. 오사카의 골목보다 더 촘촘하고 빈티지한 거리가 마음에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한 골목의 여유가 커피맛을 업그레이드 해줬다. 앉아있으니 아들과 함께 원두를 사러 온 부자가 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시골의 끈끈함을 미리보기 할 수 있을 정도의 온도였다. 400-500g은 들어가있을 것 같은 원두봉지를 손에 들고 부자는 가게를 나갔다. 

드디어 내 차례인가?

 

 




 

백팩과 카메라를 내려놓은 작은 나무의자에 앉아있는 내게 마스터가 작은 쟁반에 드립커피를 내온다. 조심스레 잔을 들고 커피를 마시는데, 최근 마셔본 커피중에 단연 최고였다. 그렇다고 내가 드립커피를 마시러 이곳 저곳 아녀보지는 않지만, 쓴맛 단맛 신맛의 바디가 제대로였다. 혀를 행복하게 해주는 맛이었다. 오랫만에 없어져가는 커피가 아깝게 느껴졌다. 

"오이시데스, 엑설런트 바디."

마스터는 좋아했고, 땡큐라는 대답을 했다. 커피 한잔으로 다시 나가사키에 오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줬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마시고 싶어, 중배전 원두를 하나 샀다. 

"땡큐"

웃으며 고개 숙이며 인사를 한 내게 마스터는 손을 흔들며 답례를 했다. 커피향만으로도 기분좋은 히토마치의 커피가 오늘따라 그립다.

 

 



 

마지막으로 나가사키의 바닷가를 보고 싶었다. 후쿠오카를 가기 전 2-3시간 동안 데지마 근처를 돌아봤다. 흔히 나가사키의 데지마워프라는 이름으로 리뷰들이 많이 올라온다. 데지마워프라는 곳은 다름아닌 식당들이 즐비한 건물의 이름이었다. 포르투갈의 영향을 많이 받는 흔적을 보고싶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무엇보다 넓은 바다가의 줄선 배들이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나가사키에서도 많은 외국인들을 볼 수 있었던 곳이다. 

 

 




데지마 워프에 들어가며...






<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로 보실 수 있습니다. 어설프게 만든 와이드 사진이니 감안하시고 봐주시길.>


 

이곳 데지마 워프에서 나가사키 역쪽으로 걷다보면 낡은 큰 건물이 하나있는데, 이곳에서도 데지마워프 근처의 바다 전경을 보기 좋다. 파노라마 사진을 찍고싶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다음에 나가사키에 온다면 이곳에서 야경을 담아내보고 싶다.

 

 



 

그렇게 걷고 걸어 나가사키 역으로 도착했다. 이 때가 오후 2시 정도였는데, 또 한번 재앙이 나를 괴롭혔다. 전 날에 1시쯤 카모메열차를 예약했다. 후쿠오카로 가는 기차 말이다. 그런데 스테이션에 가서 물어보니 오늘 후쿠오카로 들어가는 열차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정말 하나도 없냐니까 없단다. 이 일을 어찌해야될까?

 

 




 

생각도 못했던 나는 밖으로 나왔다. 버스는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버스터미널을 찾아봤다. 역시 또 헤매기 시작했다. 이쯤되면 자동반사다. 생존의 법칙을 알아가는 걸까? 아무나 붙잡고 버스 터미널이 어딘지 물어봤다. 그런데 내 의도와는 달리 길을 물어본 남자분은 가방 속에서 고이 모셔둔 두 번째 핸드폰을 들고 한참이나 검색하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나가사키로 가는 버스가 어디서 언제있는지 알아보고 알려주려는 것이었다. 그냥 손가락으로 버스 터미널만 알려주었어도 충분히 고마운데 말이다.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 남자사람은 미안해하며 조금 기다려 달라고 했다. 나는 시간이 많다고, 천천히 해도 된다고 내 마음을 전했다. 덕분에 터미널에서 나가사키로 가는 표를 살 수 있었다. 1시간쯤 남은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노면전차를 찍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