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예술에 미친 아이가 되다 (How I became an art-mad kid)

2020. 8. 12. 21:35Project

 

예전부터 포털이 싫었다. 블로그를 열심히 하면서도 꾸준히 포털을 싫어했다. 요즘은 영상편집 프리랜서로 먹고 살고 있는데, 유튜브도 싫어졌다.

그래도 가끔 마음을 움직이는 영상들이 있다. 그 중 제일 좋아하는 영상은 'Playing for change'의 <Stand by me>다. 전 세계 길거리 예술가들이 모여 하나의 노래를 부르는 영상인데, 볼 때마다 마음울림이 전해진다.

 

 

내가 예술에 미친 아이가 된 이유 또한 이 영상의 책임이 다분하다. '나도 이런 걸 만들고 보고싶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었기 때문에..

 

결국 하게 되었다.

 

영국에서 진짜 행운의 편지(나에겐)가 날아왔다. 몰타가 고향인 음악가 친구였다. 그녀는 한국 문화홍보원에서 주관하는 코로나 캠페인 영상제작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나에게 콜라보를 요청했다. 수상할 경우 그녀는 한국에 올 수 있었다. 좋은 취지다 싶었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가장 기쁜 순간에 찾아온다. 그녀는 코로나를 피해 영국에서 몰타로 이주한 상태였고, 나는 한국에 있었다. 만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오랜 시간 온라인을 통해 일해온 나에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는 데 까지 해보자. 일단 하기나 해!'

이 마음으로 버텨냈던 것 같다. (지나고보면 이 마음이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 같다.) 그녀는 곧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모든 일이 잘 풀리면 너무 좋겠지만, 언제나 예술적 활동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 

 

SURIV Project Video Screen Shot

 

생업과 현실 사이의 괴리다. 그녀는 작업 중간 수시로 우울함을 내뿜었고, 못지 않게 한 우울하는 나도 감당하기 힘든 에너지였다. 그녀를 달래기도 하고, 때로는 다그치기도 했다. 문제가 이것만은 아니었다. 해보지 않은 일이라 자신감이 부족했다. 영상편집은 나름 익숙해져 있었지만, 사운드를 편집하는 건 해 본적이 없다. 사서 열정페이(사실상 무페이)로 일 해본지가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일단 시도한다. 그리고 빡치기 시작했고, 또 다잡고, 또 빡치고.. 이 걸 7-8번 정도 거듭한 것 같다. 4번째쯤 다퉜을 때에는 그 정도가 좀 심해서 서로 2-3일 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지나고 보면 정말 큰 문제 아니다.

 

이유는 내가 담당한 랩 파트였다. 과도한 업무의 양으로 인해서 나는 스트레스 해소창구가 필요했고, 그 창구를 노래에서 풀려고 했던 것 같다. 영상과 음악 편집뿐만 아니라 나는 일정부분의 랩을 해야했다. '조금만 스웩을 섞고 싶은데..' 그래서 더블링과 에코를 조금 섞었다.  

하프 선생인 그녀는 귀신이었다. 자연스러운 음악을 좋아한 그녀는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국적이 문제가 아니라 관점이 문제다.

 

막연한 환상같은 것이 있었다. 유럽쪽은 상대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될거라는 것, 또는 갈등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다. 물론 유교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미묘함과는 그 호흡이나 온도가 다르지만, 역시 케바케라는 것을 겪고 나서 확실하게 또 한번 알게 된다. 

내가 이 렇게 힘들게 일하고 이 정도도 못한다고?

그녀도 어느 정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나에게 사과 메일을 2번이나 보냈다. 잠시 생각했고, 어쨌든 프로젝트는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과정이지만, 그 과정이 빛을 보려면 결과가 역시 중요하다. 

 

프로젝트 파일을 다시 열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것을 시작으로 나는 프리미어 프로(영상편집 프로그램)로 만들어내서는 안될 시퀀스를 만들어 낸다.

음악은 박자와 리듬이 중요한데, 영상편집 프로그램에는 그 가이드라인을 잡는 기능들이 부족하다. 박자 맞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Loop(음원 소스 중 특정 부분이 반복재생되게 하는 것)를 보낸 것이 아니라, 모든 악기 소리와 노래를 토막내서 보냈다. 연결되어야하는 음악들을 조각 조각내서 보낸 것이다. 그 작업을 하면서 나 또한 뭔가를 조각내고 싶었다. 어도비 직원이 이걸 봤다면 나에게 1개월 무료쿠폰을 던져줬을지도.

부정적 감정 가득한 두 남녀는 어쨌든 작품을 만들었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효과가 거의 들어가지 않은, 그러니까 Room(방 안에서 만들었으니까) 음악이라고 부르고 싶다. 

 

 

아쉽게도 결과는 수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주최측의 이상한 조건부 이벤트로 인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벤트였다. 하지만 소통의 부족함이 있는 두 사람이 결과물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해 본적이 없는 일을 하면서 꽤 많은 성장을 이뤘다. 

그 경험을 토대로 지금은 전 세계 예술가들이 모여 뭔가를 만들어내는 Art-Mad Kid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두 개의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고, 일부 수익금은 기부할 예정에 있다. 예술 학교를 만들고 그들에게 지원하고 있는 Play for change에 기부할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다. 

 

 

세계는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 부딛히지 전에는 알 수 없고, 성장할 수 없다. 그 과정의 어려움을 버티게 만드는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나오는 열정과 에너지다. 모두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I've hated portals for a long time. While working hard on my blog, I consistently hated portals. These days, I'm eating as a freelancer in video editing, and I don't like YouTube either. 

Still, there are sometimes moving videos. My favorite video is "Stand by Me" from Playing for Change. It's a video of street artists from all over the world gathering to sing a song, and every time I see it, I get emotional.

The video is largely responsible for the reason for creating a group of art-mad children. I want to make a video like this because I've been thinking about it for a long time.

I ended up doing it.

A message came from an English friend. It requested a collaboration for the video production of the Korona campaign organized by the Korea Culture and Information Service. If awarded, she could come to Korea. I thought it was a good idea. My heart began to beat.

But the problem always comes at the happiest moment. She had moved from England to Malta to avoid Corona, and I was in Korea. In other words, we can't meet. But it wasn't a big problem for me who had been working online for a long time. 

Let's do as much as we can. Just do it!'

I think I made it through with this mind. (After passing, it seems that this mind has produced the result.) She soon began to make a song. It would be great if everything worked out well, but there is always something in the way of artistic activity.

There is always a distance between reality and art.

She often vented her depression during her work. That was as much energy as I could bear. I soothed her and sometimes pressed her. This was not the only problem. There was something I had never done before. So I lacked confidence. I've got used to editing videos, but I've never edited sound. It's been a long time without pay, but for now I tried. Then it started. I worked, I started to get angry, I worked again, I got angry again. I think I've done this seven or eight times. When we played Game 4, we fought so hard that we didn't contact each other for two to three days.

It wasn't a big deal over time.

The reason we fought so hard was the rap part I was in charge of. Because of the excessive workload, a stress relief window was needed, and it seems that he wanted to relieve it from the song. 'I want to mix some swag.' So I mixed a little bit.

She was a harp teacher, and had a lot of musical experience. So I noticed right away what I did. After pursuing natural music, she didn't like that part.

Differences in opinion, regardless of nationality, easily lead to conflict.

There was a vague illusion. The European side said communication would be relatively good, or the conflict would not last long. It is different from the subtleties of those affected by Confucianism, but it is evident that each person is different.

I'm working so hard, don't you have this right?

She sent me two apologetic e-mails to see if she knew it, too. I thought for a moment, and I thought the project should be finished anyway.

It is an important process, but it is also important to see the light of the process.

I reopened the project file and called her. I start with it and create a sequence that shouldn't be made into a Premier program.

While beats and rhythms are important for music, video editing programs lack the ability to set guidelines. It's hard to keep the beat right. And she didn't send the loop, but sent all the instrument sounds and songs into pieces. If Adobe staff saw this, they might have thrown a month's worth of free coupons.

The two men and women, who were full of negative emotions, made the work anyway. As you can see in the video, I want to call it Room Music, which has little effect.

Unfortunately, the results did not lead to awards. It was a talkative and contemptible event because of the strange conditional exercise of the organizers. But the two people who lacked communication paid off, and in the process, I achieved quite a lot of growth by doing something I've never done before.

Based on its experience, it now operates Artmad Kid, where artists from all over the world gather to create something. Now we have made two music and music videos, and some of the proceeds will be donated. It would be even better if we could create an art school and make donations to play for the change that is supporting them.